치매 불안 강조한 여론조사…조기 치료·신약 도입 메시지로 이어져
레카네맙 효과 논란에도 보험 적용 주장…정책 균형 필요성 제기
대한치매학회(이하 학회)가 16일 발표한 ‘초고령사회 치매 인식 및 치매 조기치료 정책 수요’ 설문조사 결과가 학술적 데이터의 성격을 넘어 사실상 특정 치매 신약을 뒷받침하는 정책 메시지 전달에 집중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일고 있다. 학회가 신약 보급을 위한 수단으로 설문 결과를 활용했다는 의심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학회는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와 공동으로 전국 성인 1,002명을 대상으로 치매에 대한 국민 인식 및 정책 수요 조사를 했다. 조사 목적은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우리 사회에서 “새 정부 출범에 따른 국정과제 수립과 보건복지부의 제5차 치매관리종합계획(2026~2030)에 반영할 정책 방향을 설정에 있어 국민의 치매 질환 인식과 정부 정책에 대한 기대를 파악하고자 함”이었다.
치매에 대한 두려움…응답자 90% 이상이 공감
조사 결과의 핵심은 치매에 대한 ‘국민 불안’이다. 이러한 불안이 실제 정책 수요로 직결되는지는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학회는 응답자의 90.4%가 치매에 대해 "두려움이나 부담을 느낀다"고 응답했다고 밝히며, 그 비율은 40대(94.9%)와 60대(94.0%)에서 특히 높았다고 강조했다. 이어서 중증 치매로 인한 사회적 의료비 및 돌봄 증가에 대한 부담을 인식한 비율도 81.2%에 달했다고 전했다.
특히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통계를 인용하며, 알츠하이머병이 2023년 기준 입원 치료에 따른 건강보험 지출이 가장 큰 질환으로 연간 1조 8,694억 원이 소요됐다고 소개했다. 치매가 환자 개인을 넘어 공적 재정 투입의 문제라는 점을 강조했다.
‘경도인지장애’ 인지도 낮지만 치료 필요성엔 동의
설문에서 강조한 또 하나의 키워드는 ‘경도인지장애(MCI)’다. MCI는 알츠하이머병의 전 단계로 치매 발병 위험이 정상인보다 10배 이상 높다고 설명했다. MCI를 “잘 알고 있다”고 답한 비율은 27.7%고, “들어본 적 있다”까지 포함해도 50.2%에 그쳤다.
전체 응답자의 81.2%는 치매 초기 단계에서의 치료 개입이 중증으로의 악화를 막는 데 필요하다고 동의했다. 특히 치매 환자를 가족이나 지인으로 경험한 응답자 85.5%가 동의해 미경험자(77.9%)보다 높은 공감도를 보이며 초기에 치료 개입이 이루어져 병증의 악화를 막아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였다. 이는 조기 치료의 중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을 보여주지만, 구체적인 치료 방법이나 접근 방식에 관해서는 다각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신약 치료와 건강보험 적용…정부 정책 도입 다수의견으로
이어 알츠하이머병의 초기 원인을 제거해 증상을 억제하는 ‘신약 치료’에 대해, 81.5%의 응답자가 정부의 건강보험 적용 등 적극 지원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고 밝혔다. 이는 학회가 신약 중심의 정책 도입을 여론의 ‘다수의견’으로 제시하려는 구조로 해석될 수 있다. 이러한 접근은 특정 제약사의 이해와 맞물릴 경우 공적 정책의 독립성과 신뢰성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
또한 “응답자의 78.3%가 새 정부에 선제적인 치매 관리 정책을 요구하고 있다”며, 치매 전 단계 진단과 신약 치료 지원을 중심으로 한 정책 추진 필요성을 부각했다.
학회 메시지, 특정 신약 정책 유도로 해석 우려
문제는 이러한 설문 결과가 현재 논란이 지속되고 있는 레카네맙(Lecanemab) 등 조기 치료 신약에 대한 보험 적용 확대와 정책 반영 요구로 귀결된다는 점이다.
대한치매학회 최성혜 이사장은 “새 정부가 수립할 국정과제와 제5차 치매관리종합계획은 치매 정책 패러다임을 대대적으로 전환하고 국민이 생활 속에서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인 정책이 담기기를 바란다”며, “학회 역시 이를 마련하는 과정에 적극 협조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구체적인 정책 방향에 대한 설명 없이, 보도자료 전반이 ‘조기 진단→초기 개입→신약 치료→건보 적용’이라는 단선적 메시지를 강화하고 있다는 점이 우려스럽다. 자칫 정책 메시지가 다양한 실제 대안을 고려하지 않은 채 신약 의존 일변도로 흐른다면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해외에선 레카네맙 효과 논란…치매 정책, 균형 필요
치매 초기 치료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중요하며, 초기 치료는 치매 환자와 그 가족에게 절실한 해결책이다. 하지만 그 수단이 신약에 편중되면 부작용 위험과 함께 사회적 비용 부담을 키울 수 있다.
레카네맙은 신중한 사용이 요구되는 약제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2023년 정식 승인했으나, 임상적 효과는 제한적이고 안전성에 대한 논란이 여전히 크다.
레카네맙의 임상3상인 CLARITY-AD에 따르면, 레카네맙은 위약 대비 인지기능 저하 속도를 27% 늦췄으나, 이는 CDR-SB 점수 기준 0.45점 차이에 불과해 일상생활 기능 개선에는 의미 있는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는 비판이 일었다. 게다가 피험자의 12.6%가 뇌부종(ARIA-E), 17%가 뇌출혈(ARIA-H)을 경험했고, 사망 사례도 보고됐다. ARIA 부작용은 항체 치료제의 대표적 위험으로, 특히 고령자나 항응고제를 복용하는 환자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어 적용 대상의 세밀한 선별이 중요하다. 따라서 레카네맙은 ‘약효 기대’보다는 ‘위험 관리’의 관점에서 다뤄져야 할 것이다.
치매 정책, 신약 의존 넘어 균형적 접근 필요성 제기
학회는 뇌 속 아밀로이드 베타, 타우 단백질 등의 병리적 변화로 인해 발생하는 알츠하이머병을 약물로 제거하거나 억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그 방안으로 레카네맙과 도나네맙 등 항체 치료제, 조기 진단 MRI, PET 검사 등 생의학적 해법을 제시해 왔다.
식약처는 레카네맙의 국내 허가 과정에서 중앙약사심의위원회를 열지 않았으며, 통상 요구되는 가교시험도 면제했다. 이에 대해 의·학계 일각에서는 정책적 판단이 과학적 검증을 앞선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도나네맙은 미국에서 정식 허가되어 시판 중이고 여러 국가가 승인 진행 중이나 유럽연합에선 안전성 우려로 보류 상태다. 한국의 경우 도나네맙은 가교시험(6개국에서 TRAILBLAZER‑ALZ 5 진행, 이 중 한국인 114명 포함) 등 통계적 유의성이 확보되면 절차를 거쳐 승인할 것으로 예상된다.
레카네맙은 체중 50 kg 기준 1회 주사를 맞는 데 약 100만 원이 드는 고가의 주사제다. 학회는 고가의 신약 처방에 대해 신중론보다는 기대감이 우세하다. 식약처가 레카네맙에 대해 중앙약사심의위원회를 생략하고 가교시험을 면제한 결정에 대해, 학회는 이와 관련한 문제 제기보다는 빠른 처방 가능성에 기대를 나타내는 입장을 보여왔다.
해외에서 논쟁 중인 레카네맙 보험 적용 문제
레카네맙의 보험 적용 문제는 해외에서도 논쟁 중이다. 미국은 메디케어(Medicare)를 통해 레카네맙에 대해 조건부 보험 적용을 시작했지만, 부작용 우려와 비용 대비 효과 문제로 환자 등록 및 추적조사 시스템에 참여해야만 급여가 가능하도록 적용 범위를 제한했다. 미국 독립 보험 평가기관(ICER, Institute for Clinical and Economic Review)은 “레카네맙은 제한된 효과에 비해 고비용 구조로 의료시스템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일본은 2023년 레카네맙을 건강보험에 등재하면서 보험 적용으로 급증하는 지출로 인해 사회보장제도의 붕괴 가능성 우려마저 제기됐다. 영국 NHS(국가보건서비스)는 “의미 있는 인지기능 개선이 확인되지 않았다”며 급여 신청을 거부했다. 유럽연합은 레카네맙의 안전성 우려와 효능의 제한으로 부정적이었으나 추가 자료 제출 및 재검토를 통해 제한된 환자군에서의 효능과 안전성을 고려해 조건부 승인을 결정했으며, 보험 적용 여부는 각 회원국의 보건당국이 개별적으로 결정하도록 했다.
이처럼 주요 국가들조차 레카네맙의 임상 효과, 안전성, 비용 문제를 둘러싸고 매우 신중한 접근을 취하고 있다. 여론 설문 결과를 바탕으로 보험 신속 등재나 정책 조기 반영을 추진하기에 앞서 더욱 냉철한 과학적·사회적 검토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치매 정책, 다층적 접근 필요
치매에 대한 국민 불안과 선제 대응의 필요성은 분명하다. 하지만 유관 정책이 특정 약제 중심의 의료적 접근에만 치우칠 경우, 실제 환자와 가족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는 한계가 따를 것이다.
치매 정책은 지역사회 중심의 인지중재, 일상생활 지원, 공공 돌봄 인프라 확충 등 다층적이고 다학제적인 관점이 균형 있게 반영돼야 한다. 정부는 학회나 제약사의 의견에만 치우치기보다 다양한 전문가 집단과 시민사회 그리고 돌봄 현장의 목소리를 고루 수렴해서 치매 정책의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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